의-정 입장차만 재확인 지난 26일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포괄수가제 당연적용을 위한 공청회'는 어떠한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의료계와 학계, 보험자 단체와 시민단체의 팽팽한 입장 차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이 날 주제 발표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강길원 박사는 "선택제를 지속하면 수입 증가를 위해 진료내역을 불필요하게 늘릴 기관들은 행위별수가제로 빠지고 진료행태가 합리적인 기관만 DRG지불제도에 남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DRG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인 비합리적인 진료행태의 교정을 달성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의료기관이 DRG지불제도를 선택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DRG 수가 수준을 적어도 행위별수가 수준과 같거나 높게 책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당연적용이 연기될 경우 불필요한 보험재정지출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면서 "시범사업 평가 결과 필수적인 의료서비스 제공량이 시범사업 후 오히려 증가했다"며 의료계가 우려하고 있는 의료의 질 저하 등을 이유로 더 이상 DRG당연 적용을 미룰 수 없다고 강하게 피력했다.
이에 대해 한림의대 이근영 교수는 지정토론에서 "시범사업 실시 이후 의사나 환자로부터의 불만사항 접수가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은 당연적용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며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15개의 종합전문의료기관 중 현재까지 참여하고 있는 의료기관이 왜 2개 밖에 되지 않는지 원인분석이 이루어져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일선에서 진료하고 있는 임상의사와의 합의 없이 의료계의 전 학회가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보험자 단체에서는 행위별수가제도가 진료의 왜곡을 양산한다고 하지만 DRG가 오히려 더 심각한 진료왜곡 현상을 가져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교수는 특히 "민간의료기관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DRG는 순기능보다 진료 폭 제한으로 인한 규격화와 신의료기술 개발에의 의욕상실 등 역기능을 가져올 것"이라면서 "환자의 선택권이 박탈됨으로써 특정 시술이나 검사를 받기가 어렵고 중증 환자를 기피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병협 대표로 나선 고대 구로병원 이석현 원장은 "DRG는 대학병원들에게 공포와 혐의의 대상이며 당연적용할 경우 매년 순수익의 0.5%가량 손실이 발생한다는 추정치가 나왔다. 이는 고스란히 경영난을 겪고 있는 병원의 몫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정부에서는 7개 단순 질환에 지나지 않고 수가 역시 행위별수가제보다 높은데 무엇이 문제냐고 하지만 달걀을 모두 주워담은 후 바구니 주인이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꼬집으면서 적정진료, 적정보상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예방의학과 이선희 교수는 "소비자는 의료기관을 선택할 때 최상의 의료서비를 최우선으로 하는데 획일적인 진료행위를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반문하고 시민단체는 보편적인 소비자 입장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교수는 행위별수가제 하의 진료행태 왜곡에 관해서 "우리나라의 진료행태 문제는 행위별수가제 때문이 아니라 박리다매식의 보험체계가 원인이며 이를 개선하기 전에는 DRG를 도입해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반대로 경실연 김진현 보건의료위원장은 "DRG는 현행 행위별수가제도의 과도한 이윤동기를 막을 수 있는 제도"이며 "7개 질환군 뿐 아니라 외래까지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려되는 의료의 질 저하에 대해서는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대책이 없다면 바로 총액예산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겨레신문 안종주 기자는 "의료계는 이미 의약분업 당시 집단행동의 힘을 보여줬으며 그로 인한 부작용이 얼마나 큰 지도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정부의 정책이 의료계의 집단행동 움직임 등으로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세웠다.
안종주 기자는 또 "시범사업의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DRG를 반대하려면 시범사업에 참여한 병원과 의사들을 회원에서 제명시키고 반대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비꼬기도 했다.
보험자 대표로 참석한 국민보험공단 이평수 소장 역시 "환자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의사들은 그 동안 환자에게 선택권을 주었는가"라고 되물으면서 "부당한 선택요구를 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현행 행위별수가제 역시 심사기준, 진료 기준 등 각종 제도를 통해 규제하고 있다"며 "DRG로 의료가 획일화, 규격화된다는 의료계의 주장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 날 플로어에서는 '주제발표와 지정토론자 중 DRG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백내장 수술을 받을 때 과연 DRG시행 병원을 찾겠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재국 박사는 "근본적인 지불보상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투명한 자료가 확보되어야 하며 의료공급자의 사회적인 지위와 처우에 대한 합의도 선행되어야 한다"면서 공급자는 합리적인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 데이터 구축에 노력해야 한다고 총평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임종규 보험급여과장은 "공청회 이후 건정심위 논의를 거쳐 최종안을 결정하겠다"고 밝혀 내달 1일 열릴 건정심에서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