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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rtion pill over the counter abortion pill over the counter [청년의사가 만난 사람] 권오주(권오주의원) "새 제도 좋아하는 복지부 관료들께, <일본의 의료>를 추천합니다." ‘목표를 두고 과정을 생각하는 일본’ vs ‘제도 쫓느라 내용 잃어버리는 우리’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예리한 안목으로 명성이 높은 권오주 선생이 <일본의 의료>라는 책을 번역 출간했다. 일본의 의료는 여러모로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있지만, 오히려 미국이 일본의 의료정책을 배워갈 만큼 선진적인 측면이 더 많다. 일본의 의료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 번역서를 읽노라면 일본의 의료시스템이 지금과 같이 안정되기까지의 역사적 과정과 그 배경이 손에 잡히든 다가온다. 왜 지금 이 책이 우리에게 필요한지, 번역자인 권오주 선생을 통해 들어봤다.
Q. 일본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받은 책이라고 알고 있다. 이 책을 어떻게 알게 됐나? 일본의사회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저자가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던 91년, 미국정부에서 의료개혁을 위해 각국의 성공적 의료제도를 수집했다. 이 책은 그 때 미 정부로부터 받은 일본의료에 대한 프로젝트를 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료 초창기부터 지금까지에 이르는 과정을 집약한 내용이 비교적 객관적이었고, 정책이 결정된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Q. 번역부터 출판까지의 과정?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큰 책이라 생각해서 용기를 내서 일단 번역을 시작했다. 초벌 번역을 마친 지는 1년이 넘었다. 의료관련 책은 잘 안 팔린다고 해서 출판사 잡기가 힘들었는데, 이번에 좋은 편집자를 만났다. 편집자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쓰는 용어가 다르다고 해서 상세한 주석을 달기 위해 보완을 한 것 말고는 원서를 그대로 옮겼다.
Q. 번역 자체도 어렵지만, 의료제도라는 특수한 분야에 관한 책의 번역은 더 어려울 듯한데?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일제시대였으니까 일본어에 대한 감각이 있었고, 건강보험이나 정책에 대한 관심도 원래 많았다. 컴퓨터를 통해 자료를 틈틈이 수집했고, 작업도 컴퓨터를 통해 했기 때문에 특별히 힘든 것은 없었다.
Q.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나? 우리가 일본의료를 10년 차이로 따라간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나. 실제로 의료계가 돌아가는 것을 묘사한 부분을 보니 우리 의료계와 진행과정이 똑같았다. 10년 전에 나온 책이라 현재 일본의료의 상황과 다를 수 있지만, 진행과정이 자세히 묘사돼 있어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Q. 우리가 가진 문제점을 일본 의료도 그대로 갖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물론 일본의료계와 국민, 정부도 의료문제로 서로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정부에서 의료개혁의 모델로 삼을 만큼 뛰어난 점도 갖고 있다. 일본의료계가 우리처럼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 것은 한 가지, 화(和:균형)를 깨지 않기 위해 서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의료 역시 낮은 비용, 평등한 서비스, 의사에 대한 국민의 환상 등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 그런데도 큰 소리가 터져 나오지 않은 것은 의료당사자 간의 화(和)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에 기인한다.
Q. 의료계와 정부 사이에 별다른 마찰이 없다는 뜻인가? 일본의사회와 후생성은 ‘철천지원수 같은 사이’라는 것을 그들도 인정한다. 당연히 내부적으로는 항의도 하고, 갈등하겠지. 그러나 그게 표출된 적은 한 번도 없다. 특히 일본 정부가 의료정책을 구현해나가는 과정을 보면 의견을 조율해나가는 과정이라든지, 현장 파악에서 우리 정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 행정부가 좀더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의료계도 썩 좋은 대응을 했다고 볼 수 없지만, 그런 껄끄러움을 주도한 것은 정부 쪽이다. 갈등해야 할 때도 있지만 정책을 진행해야 하는 당국에서 갈등의 동기를 유발하는 것은 곤란한 것 아닌가.
Q.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가 가장 다른 점은? 의약분업을 하기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제도를 보고 다녔겠지만 한 달 머문다고 해서 그 나라 내부를 다 볼 수 없다. 대부분 요약된 자료나 신문자료 같은 것을 참고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서는 그 제도가 정착됐을 때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이디어만 보고 ‘좋다’ 싶으면 도입하는 식이다. 일본에서는 참고자료를 만들 때도 미국 리서치센터에 있는 일본의사를 객원연구원으로 해서 자료를 만든다. 미국사회를 전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을 통해 자료를 만드니 내용이 충실하고, 정책을 성급하게 도입하기보다는 조금씩 현실과 맞춰나간다. 우리 정부는 이런 과정을 과소평가한다. 같은 정책이 한국에 들어오면 껍데기만 남고, 일본에 들어가면 알맹이만 남는다는 말이 있다.
Q. 우리나라의 정책입안방식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의료대란 후 정책 돌아가는 것을 지상(紙上)에서 보면, 독일 갔다 온 사람이 ‘거기는 총액계약제 하더라’하면 신문에는 ‘총액계약제 고려 중’이라고 나오고 싱가포르 갔다 오면 ‘메디세이브’에 대해 떠들고 그런 식이다. 정책을 만들어 내는 데 너무 노력을 들이지 않는 것 같다. 민간, 대학교수, 보건학자 다 마찬가지지만 ‘내가 갔을 때 보니까 좋더라, 우리도 해 보자’ 이런 식이라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와서 만들어낸 정책이 우리나라에 맞을 리 없다. 일본은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입안해서 도입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그동안 정책은 일본식으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일본에서 입안 중인 정책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일본보다 먼저 시행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일본에서는 우리나라가 경험하는 시행착오를 보고 그 부분을 보완한다는 말도 있다.
Q. 건강보험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70년대에 개업했는데 건강보험이 77년에 시작됐다. 알아야 대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특히 90년 이후부터 의료제도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어떤 점이 불편한지 알려면 모델이 있어야겠다 싶어서 그 때부터 외국자료를 모아가면서 공부했다. 일본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
Q. 자료는 어떻게 모았나? 우리나라 자료는 예전부터 모았고, 일본 오사카의사회와 서울시의사회가 교류하면서 일본에 간 적이 있는데 그 때 일본개호보험법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더니 한 박스 분량의 자료를 줬다. 그 때 받은 자료 중 하나가 이거다(두께 20cm가량의 일본서적을 내밀며). 일본개호보험법의 해설과 운용에 관한 책인데 일본개호보험법이 80조가 안 된다. 그런데 그 법의 요지와 과정, 개정된 내용을 하나하나 설명해서 이렇게 두꺼운 책이 된 거다. 과정을 중시하는 일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단적인 예다.
Q. 우리 의료계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의료계를 앞으로 어떻게 디자인해 나간다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 원칙에 맞게 정책연구소 같은 곳에서 연구나 세부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의협회장이 바뀌어도 원칙이 확립되어 있으면 연속성이 보장된다. 의료정책이 하루 이틀 만들어 실시되는 게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오랜 시간을 두고 정책을 만들어가는 여유, 과정을 중요시하는 관행이 정착됐으면 한다.
Q. 또 다른 계획이 있나?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대한 여러 일본 자료를 조금씩 번역하고 있다. 처음에는 ‘또 의사들 괴롭히려고 뭐 하나 새로 만들었구나’ 싶었는데(웃음), 보니까 의료소송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필요한 자료라고 느껴졌다. 일본의사회 홈페이지를 통해 자료를 모으고 있는데 도입상황부터 진행과정까지 잘 정리돼 있더라.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출판까지 될지는 잘 모르겠다.
Q. 의사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인 것 같은데? 내용을 가끔씩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94년 KMA 홈페이지가 생겼을 때 의사들에게 이런 자료를 더 많이 나눠줄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거라 생각했는데, 자료실보다는 플라자나 휴게실이 더 바쁜 공간이 됐다. 의사들이 감정적인 글에 더 반응을 하는 편이라 딱딱한 편인 내 글을 많이 볼지 모르겠다.■ |